그림 읽는 상담심리사의 ‘뭉크’ 읽기 (1)
30년을 살면서 한 번도 해외에 나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딱히 해외로 여행을 다니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는데 결혼을 하며 홍콩 살이를 시작하게 되었고, 3년 후에 돌아오는 것이 목표라는 그놈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나온 지 만 6년이 지나버렸습니다. 홍콩살이는 대체로 만족스럽습니다. 아이도 행복하게 잘 자라고 있는 것 같고, 남편은 항상 일로 힘들어 하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이루어 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는? 나의 6년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대학생때 했던 고민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예기치 못한 이변 발생으로 인한 목표 수정이랄까요.
해오던 상담심리사 일을 언어가 다른 이곳에서는 하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에 우울한 마음도 들었고 자책도 많이 했습니다. 나를 다그치기도 했고, 번번이 좌절되는 나의 상황에 분노도 컸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을 해봐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뭐라도 해야지 하는 생각에 책을 한 권씩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조원재 작가의 ‘방구석 미술관’이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읽기 쉽고 편해서 금방 한 권을 다 읽고는 좀 신이 났습니다. 흥미롭다는 말로는 좀 부족할 것 같은 내가 알지 못하던 새로운 세계를 만난 것 같았습니다.
그림 한 점에 몇 천억 씩 팔리는 대단한 그림을 그린 화가들도 어린 시절이 있었고, 아팠던 시기가 있었으며 그들에게 영향을 준 가족, 친척,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 히스토리의 총합이 화가 자체이자 그들의 그림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조금 더 알아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갔던 작가는 뭉크였습니다. 나는 이렇게 사지 멀쩡하고 건강한데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좌절이 이리 힘이 들고 애가 타는데 뭉크에게 세상은 환경은 너무 잔인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불굴의 뭉크는 지지 않고 버텨냈습니다.
만약 아무도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고 돌봐주지 않는다면 아기는 죽게 된다. 설사 부모가 자녀의 요구를 충족시켜 준다고 하더라도 필요한 때 즉시 반응해주지 않고 마지못해 필요를 채워준다면, 우리는 바로 그러한 경험을 중심으로 우리 자신을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
- 가족치료 심리학자, 버지니아 사티어(Virginia Satir)-
우리의 성격, 생각, 대인관계 방식등을 만들어가는데 생애 초기 가족과의 관계가 많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명화를 그린 화가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그들의 삶을 이해하면, 그림과 더 가까이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dvard Munch (1863 - 1944, Norway)
Edvard Munch , The Scream, 1893, Norway National Gallery
에드바르드 뭉크의 대표작 ‘절규’의 모티브가 된 뭉크의 노트를 잠시 엿볼까요.
푸르스름한 검은 피오르드(협만) 위로, 불과 피의 혀가 뻗어나갔다. 그 때, 나는 거대하고 무한한 자연의 비명을 들었다.
이 일기의 내용이 훗날 세계가 사랑하는 뭉크의 대표작 절규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합니다. 짧은 문장이지만 뭉크 깊숙한 곳의 종교적인 면과 거대한 대자연에 무기력한 자기 내면의 고통을 엿볼 수 있지요.
뭉크의 아버지는 귀족가문이면서 교구사제인 할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교구사제인 아버지에게서 자란 것을 보면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채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환경에서 자랐을 것을 예상해 볼 수 있겠죠. 뭉크가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되는 것을 반대하고,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뭉크에 대한 경제적 지원까지 중단했던 아버지의 경직된 모습의 배경을 성장과정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뭉크의 아버지는 훗날 군의관이 되어 44세에 23세인 뭉크의 어머니인 로라와 결혼하여 7명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군의관의 급여는 터무니 없이 적었고 업친데 덮친 격으로 사업마저 실패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형편에 맞는 작은 아파트를 전전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뭉크의 아버지는 아내 로라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아내를 결핵으로 보내고 뭉크의 아버지는 우울감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뭉크가 이야기하는 모습을 통해서도 아내와의 사별 후 힘들었던 아버지와 가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신경질적이고 강박적으로 종교적이었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광기의 씨앗을 물려받았다. 두려움, 슬픔, 죽음의 천사들은 내가 태어난 날부터 내 곁에 있었다." 아버지의 광기 어린 모습을 보며 공포를 느꼈을 동시에 그런 아버지를 닮아 버린 자신을 바라보는 뭉크의 시선을 느낄 수 있습니다.
뭉크의 아버지는 아내와의 사별 후 자녀들에게 신경질적이고 지나치게 종교에 심취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뭉크에 따르면 아버지는 죽은 어머니가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며 그들의 잘못된 행동에 슬퍼하고 있다는 말을 하며 자녀들을 질책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이런 말들은 남은 자녀들에게 일찍 떠나간 엄마에 대한 원망과 내 잘못으로 인해 하늘에서 지켜보며 슬퍼할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의 양가감정을 느끼게 했을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종교적이고 엄격한 아버지와 병으로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 뭉크의 가족은 종교와 질병의 그늘에 뒤엉켜있었습니다. 뭉크 자신 또한 잦은 질병으로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태어나 1살 때 귀가 많이 아팠고, 12살에는 아파서 중학교 등록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3살에는 고열과 피를 토하며 “지옥에 가는 게 두렵다, 마귀를 보았다.”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잦은 질병치례로 학업을 중단하는 일이 많았던 뭉크는 언제라도 내가 죽을 수 있다는 죽음과 질병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뭉크가 14살 때 가장 사랑하고 아꼈던 누나 소피 또한 어머니와 같은 질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뭉크에 인생에서 겪는 두 번째 죽음이었죠. 뭉크의 삶에서 의미 있는 관계를 맺었던 여자인 엄마와 누나가 모두 세상을 떠났고, 이는 뭉크에게 커다란 상실감과 동시에 미래의 여성과의 관계에서 어떠한 영향을 주었을 것을 예상해 볼 수 있겠죠.
Edvard Munch , The Sick Child, 1885 - 1886, Norway National Gallery
뭉크의 초창기 그림인 ‘아픈 아이’입니다. 아픈 아이는 뭉크의 누이 소피이고 옆에 앉아서 손을 잡고 있는 여성은 뭉크의 이모인 카렌으로 보입니다. 누나가 떠난 지 9년이나 지난 후 뭉크는 이 그림을 시작했고, 같은 주제로 6점의 그림을 그렸는데 그중 첫 번째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1년의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그림을 긁어내고 다시 그리는 과정을 보면, 누이 소피에 대한 참아두었던 애도를 고통스럽게 토해내는 것 같습니다. 그림의 질감을 보면 누이를 잃은 슬픔과 좌절을 강박적으로 작업하고 재작업하는 뭉크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 안쓰럽고 가슴이 아픕니다. 어쩌면 뭉크에게 그림은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치유의 수단 또는 그 슬픔을 견뎌내고 나의 삶을 다시 살아가기 위한 삶의 강한 의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뭉크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엿보고 그림을 보니 어떠신가요?
그림의 이야기가 들리는 것 같은가요? 다음엔 뭉크의 삶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최예림
어쩌다보니 홍콩에 떨어져 꾸준하게 심신수련 중인 10년차 상담 심리사입니다. 현재 트로스트와 네이버 엑스퍼트에서 온라인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